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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막을 수 있다면, 막고 싶지.

 

시마는 울렁거림과 함께 눈을 뜬다. 위장을 꺼내 마구 흔들었다가 끼워 넣은 듯이 기분이 나쁘다. 출발하지 않은 배에서도 멀미를 할 수 있나. 정작 갑판은 고요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팔이 제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음을 깨닫는다. 무엇 때문인지 인식이 둔하다. 다리는 묶여 있지 않은데 두 팔은 묶여 있다. 테이프, 인가. 잘 보이지는 않지만. 다시 한번 일어나보려 무게를 옮기다가, 기우뚱, 쿵. 어깨가 바닥에 처박힌다. 그때, 타박타박,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지. 멍한 머리가 생각해낼 수 있는 이름은 하나뿐이다. 쿠즈미.

 

깼어? 좋은 아침!

 

밝게 인사하는 모습에 시마는 헛웃음을 짓지 않으려 애쓴다. 죽이지 않았군. 시마쨩,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시마쨩의 수호천사라 해도 모자랄 판에. 넘어진 그의 앞에 쪼그려 앉은 채 쿠즈미는 검지로 시마의 미간을 톡톡, 두드린다. 나는 말이야, 시마쨩의 시간을 되돌려 줄 수 있거든.

 

 

네가 신이라도 된다는 거야?

아니, 신은 나보다 더 잔혹해. 무슨 말을 청해도 들어주지 않지. 불쌍한 사람에게도,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아. 그렇게 견디며 사는 거야.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는데도.

하지만 나는 봐, 시마쨩의 소원을 들어주러 왔잖아? 마약, 으로 말인가. 그것도 한 가지 방법이긴 해. 어떤 사람은 희뿌연 꿈만으로도 숨 쉴 수 있거든. 그렇지만 시마쨩은 달라. 너는 오히려 꿈이 죽이는 쪽이지. 남들이 뭐라 하건, 심지어.

생명선이 길다고 해도—

시마쨩이 보고 들은 것만 믿잖아. 그렇게 머릿속의 부스러기는 커지고, 커져. 더 이상 부스러기가 아니게 되지. 불쌍해라. 기름 위를 밑창 하나 없이 달리는 꼴이야. 그래서 짠, 내가 온 거야. 시마를 구해주려고. 웃기는 소리. 칭찬 고마워, 하지만 간사이 사람에게 웃긴다는 말은 별로 새롭지 않으니까 다른 표현이 좋아. 설령, 정말 네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해도 네 말대로 할 생각은 없어. 아니, 시마쨩은 돌아가게 될 거야. 경찰이니까. 그 전까지 산책이나 할까. 어차피 시마는 도망갈 수도 없고, 나를 잡을 수도 없잖아. 내가 했다는 증거가 없으니까 말이지. 시간도 많은데 이야기나 좀, 나누자고. 나, 시마쨩이 제법 마음에 들거든. 너와 이야기를 나눈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넌 범죄자야. 글쎄, 용서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

 

쿠즈미는 시마를 일으킨다. 손이 뒤로 묶인 탓에 균형을 유지하기 어렵다. 허황된 대화 사이에서 시마는 기회를 엿본다. 도망은 무슨. 그는 붙잡을 것이다. 홀로 이곳에 와 있다는 것이 의지의 증거이다. 그 사이 쿠즈미는 크루즈에서 내린다. 저대로 도망갈까 걱정도 잠시. 그는 정말 시마와 이야기를 나누려는 듯 시마가 위태롭게 선박에서 내리는 것을 지켜본다. 궁금한 게 하나 있어.

시마쨩, 네 부족한 점은 뭐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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